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가 국내 양대 서점인 교보문고와 예스24에서 올해 가장 많이 팔린 책으로 조사됐습니다. 2014년 5월 출간된 ‘소년이 온다’는 계엄군에 맞서다 죽음을 맞게 된 중학생 동호와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입니다. 한강은 철저한 고증과 취재로 광주민중항쟁 당시 상황을 그리고 트라우마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로합니다. 상처의 구조에 대한 투시와 천착의 서사를 통해 한강만이 풀어낼 수 있는 방식으로 1980년 5월을 새롭게 조명하며, 무고한 영혼들의 말을 대신 전하는 듯한 진심 어린 문장들로 5·18 이후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교보문고·예스24에서 올해 가장 많이 팔린 책 ‘소년이 온다’
교보문고가 지난 2일 발표한 2024년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에 따르면 ‘소년이 온다’는 ‘채식주의자’와 ‘작별하지 않는다’를 제치고 연간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습니다. 한강은 지난 2016년 조사에서도 ‘채식주의자’로 연간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한 바 있습니다. 두 차례에 걸쳐 1위에 오른 건 1993년(반갑다 논리야)과 2002년(아홉살 인생) 1위를 차지했던 위기철 작가 이후 22년 만입니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소년이 온다’는 지난 10월 10일 노벨상 수상 이후 두 달이 채 안 되는 기간의 판매량만으로 연간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며 “이는 지난 10년간(2015~2024년) 종합 1위를 한 도서와 비교했을 때도 가장 많은 판매량”이라고 밝혔습니다.
한강의 작품은 ‘소년이 온다’를 비롯해 ‘채식주의자’(2위), ‘작별하지 않는다’(3위), ‘흰’(9위),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10위) 등 10위 안에 다섯 작품이나 이름을 올렸습니다.
예스24의 판매 추이도 교보문고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10위 안에 든 작품 가운데 절반이 한강이 쓴 책이었습니다. ‘소년이 온다’는 같은 날 공개된 예스24의 2024년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에서도 1위를 차지했습니다. ‘채식주의자’(2위)와 ‘작별하지 않는다’(3위)가 뒤를 이었고 ‘흰’과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가 각각 6위와 8위를 했습니다.
소설 ‘소년이 온다’ 줄거리
5·18 당시 중학교 3학년이던 소년 동호는 친구 정대의 죽음을 목격한 것을 계기로 도청 상무관에서 시신들을 관리하는 일을 돕게 됩니다. 매일같이 합동분향소가 있는 상무관으로 들어오는 시신들을 수습하면서 혼을 위로하기 위해 초를 밝히고, 시신들 사이에서 친구 정대의 처참한 죽음을 떠올리며 괴로워합니다.
정대는 동호와 함께 시위대의 행진 도중 계엄군이 쏜 총에 맞아 쓰러져 죽고, 자신의 꿈을 미루고 공장에서 일하며 동생을 뒷바라지하던 정대의 누나 정미 역시 그 봄에 행방불명되면서 남매는 비극을 맞습니다. 무자비한 국가의 폭력이 한순간에 무너뜨린 순박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과 무고하게 죽은 어린 생명들에 대한 억울함과 안타까움이 정대의 절규하는 듯한 목소리로 대변됩니다.
소설은 동호와 함께 상무관에서 일하던 형과 누나들이 겪은 5·18 전후의 삶의 모습을 통해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비극적인 단면들을 드러내 보입니다. 수피아여고 3학년 시절에 5·18을 겪은 김은숙은 ‘전두환 타도’를 외치는 데모로 점철된 대학생활을 포기하고 작은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면서 담당 원고의 검열 문제로 서대문경찰서에 끌려가 뺨 일곱 대를 맞습니다. 봉제공장에서 일하면서 ‘고귀한 우리를 지키기 위해 노조활동을 하다 쫓겨난 임선주는 이후 양장점에서 일을 하다가 상무관에 합류하게 되고, 경찰에 연행된 후 하혈이 멈추지 않는 끔찍한 고문을 당합니다. 상무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대학생 김진수 역시 연행된 이후 ‘모나미 볼펜’ 고문, 성기 고문 등을 받으며 끔찍한 수감생활을 했고, 출소 후 트라우마로 고통받다 결국 자살합니다.
‘소년이 온다’ 작품 평가 및 작가의 집필 후기
2014년 만해문학상, 2017년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을 수상하고 전세계 20여 개국에 번역·출간되며 세계를 사로잡았습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폭력의 문제를 천착하면서 인간성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라고 평했습니다. ‘소년이 온다’를 펴낸 출판사 창비는 “이 작품은 가장 한국적인 서사로 세계를 사로잡은 한강 문학의 지향점을 보여준다”며 “인간의 잔혹함과 위대함을 동시에 증언하는 이 충일한 서사는 이렇듯 시공간의 한계를 넘어 인간 역사의 보편성을 보여주며 훼손되지 말아야 할 인간성을 절박하게 복원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한강은 지난 9월 이탈리아에 번역·출간된 ‘소년이 온다’로 말라파르테 문학상 20번째 수상자로 결정됐습니다. 10월 1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남부 카프리 섬에서 열린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 시상식에서 그는 “존엄과 폭력이 공존하는 모든 장소, 모든 시대가 광주가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 책은 나를 위해 쓴 게 아니며, 단지 내 감각과 존재, 육신을 (광주민중항쟁에서)죽임을 당한 사람, 살아 남은 사람, 그들의 가족에게 빌려주고자 했을 뿐”이라고 수사 소감을 밝혔습니다. 또 “결국은 (내가 그들을 도운 게 아니라)그들이 나를 도와줬음을 깨달았다”며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단지 책 한 권을 썼을 뿐”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한강은 “‘소년이 온다’에 (다른 작품보다)훨씬 큰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며 “단순히 제 이야기를 넘어서 1980년 광주를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는 ‘소년이 온다’를 쓰기 위해 자료를 읽으면서 내면의 투쟁을 치르고 있었다고 회상했습니다. 이어 “필사적으로 그 폭력 앞에서 무엇인가를 하려고 했던 연약한 몸짓들에 대해 내가 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며 소설을 포기할 생각도 했다고 전했습니다.
아울러 전남도청에 마지막까지 남았던 한 시민군의 일기에서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토록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라는 문장을 발견하고 소설이 어디로 가야하는지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그 깨달음은 ‘어떻게든 폭력에서 존엄으로, 그 절벽들 사이로 난 허공의 길을 기어서 나아가는 일만이 남아 있다는 것’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