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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로봇·동물 연대 그린 SF소설 '천개의 파랑'

by 행복한리더 2024.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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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소설 '천개의 파랑' 표지. 허블출판사 제공

 

천선란 작가의 공상과학(SF) 소설 천개의 파랑2019년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 수상작으로 인공지능, 의식,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탐구합니다. 작가는 발달한 기술이 배제하고 지나쳐버리는 이들, 엉망진창인 자본 시스템에서 소외된 이들, 부서지고 상처 입은 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던 이들을 다정함과 우아함으로 엮은 문장의 그물로 건져올립니다.

 

안락사당할 위기에 처한 경주마 투데이’, 하반신이 부서진 채로 폐기를 앞둔 휴머노이드 기수 콜리’, 아득한 미래 앞에서 방황하는 연재’, 장애를 가진 채 살아가는 소녀 은혜’(연재의 언니), 동반자를 잃고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끝없는 애도를 반복하는 보경’(연재의 엄마) 등 상처 입고 약한 이들의 서사를 그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따뜻한 파랑(波浪)처럼 아우릅니다.

 

소설 천개의 파랑개요와 테마

작품의 배경은 로봇이 인간을 대체하기 시작한 2035년 한국입니다. 휴머노이드 기수 콜리와 경주마 투데이의 우정이 중심에 있습니다. 공정 과정에서 발생한 오류로 인지 능력을 갖추게 된 콜리는 자신의 파트너 투데이가 심한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스스로 낙마하는 선택을 하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후 콜리가 한때 로봇 연구원을 꿈꾸던 소녀 연재를 만나 수리를 받고, 연재의 언니 은혜와 홀로 두 딸을 키우는 엄마 보경과 가까워지는 과정이 펼쳐집니다.

 

책은 AI나 콜리 같은 안드로이드가 인간과 유사한 의식이나 감정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집니다. 기계와 인간 지능 사이의 경계에 의문을 제기하고 생명을 구성하는 것이 무엇인지, 인공 존재가 진정으로 자기 인식이나 감각을 가질 수 있는지 묻습니다.

 

버려진 콜리는 실존적 투쟁의 상징입니다. 그의 여행은 무관심해 보이는 세상에서 목적, 의미, 연결을 찾는 보편적인 인간 조건을 나타냅니다. 책은 고립, 특히 인간이 창조했지만 궁극적으로 도구로 취급되는 존재(안드로이드)의 고립에 대해 성찰합니다.

 

아울러 인간과 안드로이드 관계의 정서적·윤리적 측면을 탐구합니다. ‘인간은 지능형 기계를 어떻게 대하는가’ ‘안드로이드는 정말로 인간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고, 인간도 안드로이드의 감정을 인식할 수 있을까등을 질문합니다. 또 콜리가 주변 인간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열등하거나 소모품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AI에 대한 사회적 견해를 다루고 있습니다.

 

제목 천개의 파랑은 우울함과 희망을 상징하는 파란색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반영합니다. 파란색은 종종 콜리의 감정 깊이뿐 아니라 그가 직면한 실존적 질문의 광대함을 나타냅니다.

 

천선란의 글은 서정적이고 시적인 산문이 특징입니다. AI와 안드로이드의 세계를 배경으로 인간의 깊은 감정과 딜레마를 탐구하면서 철학적 아이디어를 서사에 원활하게 엮어냅니다. ‘천개의 파랑은 사변적인 소설과 철학적 탐구의 균형을 유지해 SF 팬과 실존 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모두가 접근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비평가들은 감정적 깊이, AI에 대한 혁신적인 접근 방식, 독자가 안드로이드 캐릭터에 공감하게 만드는 능력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이 책을 출간한 허블출판사는 “SF가 진보하는 기술 속에서 변화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예견하는 장르라면, ‘천 개의 파랑은 진보하는 기술 속에서 희미해지는 존재들을 올곧게 응시하는 소설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연극과 뮤지컬로 제작된 '천 개의 파랑

국립극단은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연극을 지난 416~28일 서울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에서 선보였습니다. 서울예술단은 같은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한 창작가무극을 512~26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무대에 올렸습니다. 두 작품은 주인공 콜리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먼저 국립극단은 연출을 위해 145크기 로봇을 특별 제작했습니다.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으로 얼굴과 눈을 표현하고 상반신과 팔, 손목 관절을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로봇입니다. 제작진의 신호를 받으면 미리 녹음된 대사를 가슴에 달린 스피커로 출력하는 방식으로 배우와 소통했습니다. 움직일 때는 콜리의 역할을 나눠 맡은 인간 배우가 로봇의 몸체와 연결된 카트를 밀어 로봇의 다리가 움직이는 것처럼 연출했습니다.

 

반면 서울예술단은 160크기 수공예 퍼펫으로 콜리의 움직임을 표현했습니다. 콜리 역을 맡은 배우가 퍼펫의 머리를 조종하고, 인형술사 2명이 팔과 다리를 맡는 방식으로 콜리를 무대에 구현했습니다. 콜리와 호흡을 맞추는 투데이 역시 인형으로 제작돼 무대에 올랐습니다.

 

천선란은 소설이 연극과 뮤지컬로 관객을 만나는 것에 대해 "작가의 입장에서 책을 읽으며 상상하던 콜리가 그림 밖으로 나와 무대에 서고, 말을 걸어준다는 것에 감동했다"고 말했습니다.

 

소설가 천선란은 누구?

천선란은 열일곱 살에 무작정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안고 부모님의 허락 없이 예술고등학교 문예창작과에 진학했습니다. 소설을 쓸 수 있는 공간이라면 아주 작은 곳이라도 어디든지 발을 디뎠습니다. 잠시 소설 쓰기를 작파한 적도 있지만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열망은 뿌리칠 수 없었다고 하네요. 그는 글을 쓰지 않을 때도 언제나 무언가를 상상했고, 이야기를 꿰고, 인물에게 숨을 불어넣고 있었기에 언제나 작가였습니다. 데뷔 전부터 브릿G, 환상문학웹진 거울 등 여러 플랫폼에 꾸준히 작품을 업로드하며 내실을 다져왔습니다.

 

2019년 첫 장편소설 무너진 다리SF 팬들에게 눈도장을 찍었고, 20207월 소설집 어떤 물질의 사랑을 통해 SF의 대세로 굳건히 자리잡았습니다. 2019년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 수상작 천 개의 파랑은 출간 전부터 많은 SF 팬들의 뜨거운 기대를 모았습니다.

 

한국과학문학상 심사위원인 김보영 소설가는 천 개의 파랑이 가득한 듯한 환상적이고 우아한 소설이라며 이미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유명 작가의 작품이라 해도 믿을 법했다고 극찬했습니다. 김창규 작가는 더 이상 좋은 한국 SF의 가능성이란 얘기는 듣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기뻤다그만큼 SF를 충분히 소화하고 빚은 작품들이, 가능성을 넘어 다양한 길을 정하고 완성되고 있었다고 평했습니다.

 

허블출판사는 천선란에 대해 어느 날 홀연히 우리에게 다가온 혜성 같은 빛이 아닌, 바위마저 뚫는 꾸준함으로 조금씩 스며든 물방울이라며 그 물방울들은 이제 하나로 모여 거대한 파랑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이어 긴 습작의 시간으로 단련된 문학적 근육, 그 동력으로 지금 이 순간도 쉼 없이 쓰고 있는 작가. 이 성실함만으로도 천선란의 행보는 더할 나위 없이 미더운데, 그는 언제나 여기보다 더 먼 곳을, 더 넓은 곳을 응시하는 곧고 너른 시선까지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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