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호모 데우스’ 등 글로벌 베스트셀러를 통해 우리 시대 가장 중요한 사상가의 반열에 오른 유발 하라리 히브리대 역사학과 교수가 신작 ‘넥서스’를 발표했습니다. 책은 압도적 통찰로 인공지능(AI) 혁명의 의미와 본질을 꿰뚫어 보고 인류에게 남은 기회를 냉철하게 성찰합니다. 출간 즉시 뉴욕타임스와 선데이타임스,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올랐습니다.
‘21세기 사상계의 신데렐라’ 유발 하라리
역사학자이자 철학자인 하라리 교수는 현재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케임브리지 대학교 실존위기연구센터(Centre for the Study of Existential Risk) 석학연구원입니다. 1976년 이스라엘 하이파에서 태어나 2002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중세 전쟁사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역사와 생물학의 관계, 호모 사피엔스와 다른 동물 간의 본질적 차이, 과학과 기술이 불러일으킨 윤리적 문제 등 거시적인 주제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2009년과 2012년에 ‘인문학 분야 창의성과 독창성에 대한 플론스키 상’을 수상했고, 2011년 군대 역사에 관한 논문으로 ‘몬카도 상’을 받았습니다. 2012년 ‘영 이스라엘 아카데미 오브 사이언스’에 선정됐으며, 2018년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인류의 미래에 관해 기조연설을 했습니다.
인류의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를 탐색한 ‘인류 3부작’인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이 전 세계 50여 개국에서 출간돼 1600만부 글로벌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21세기 사상계의 신데렐라’로 떠올랐습니다. ‘유발 하라리의 르네상스 전쟁 회고록’은 ‘인류 3부작’의 사상적 배경이 되는 선행 연구로, 하라리의 옥스퍼드 대학교 박사학위 논문입니다.
교육과 스토리텔링 부문의 사회적 기업인 ‘사피엔스십’(Sapienship)을 배우자 이치크 야하브와 공동 창립해 현재 세계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공론장을 활성화시키는 데 기여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유발 하라리 신간 ‘넥서스’ 개요
‘호모 데우스’ 출간 이후 AI 전문가라는 평판을 얻게 된 하라리 교수는 AI 세계를 움직이는 과학자, 기업가, 정치인들의 초대를 받아 현대 기술의 최전선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직접 보고 들을 수 있었습니다. ‘넥서스’는 그 특별한 경험을 하라리 교수만의 독특한 역사적 시각으로 통찰해 특유의 스토리텔링으로 정리한 결과입니다.
상아탑 속 자신의 방에만 안주하지 않고 정치학, 종교학, 매체학, 진화생물학, 컴퓨터과학 등 다양한 학제 간 지식을 습득해온 하라리 교수의 독창적인 역사적 시각과 스토리텔링은 인류를 위한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빛을 발합니다.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에서 펼쳤던 그의 논지가 ‘정보’를 중심으로 통합돼 ‘넥서스’에서 더 정교하게 실체를 드러냅니다.
제목 ‘넥서스’(nexus)는 사전적으로 ‘결합’ ‘연결’을 의미합니다. 이는 정보의 기능으로, 정보는 현실이나 진실과 상관없는 경우가 많지만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 사람들을 불러모을 수 있습니다. 책은 정보 흐름이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역사를 재해석합니다. 모든 대규모 사회는 ‘정보 네트워크’이고, 이야기(신화), 문서(관료제의 서류), ‘거룩한 책’(신의 말씀을 기록하고 해석하는 책), 그리고 오늘날의 컴퓨터와 AI는 모두 ‘정보 기술’입니다. 이야기는 정보 네트워크를 결속하고, 문서는 네트워크에 질서를 부여하며, 거룩한 책들은 그런 질서를 정당화합니다.
출판사 김영사의 ‘넥서스’ 본문 요약
책은 ‘마법사의 제자’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마법사의 제자는 스승의 마법 주문으로 일을 손쉽게 해결하려다가 도리어 통제 불능 상황을 초래해 작업장을 물바다로 만들어버립니다. 챗GPT와 유튜브 알고리즘, 더 나아가 미래의 AI는 정말 우리의 통제를 벗어나 도리어 인류를 정보의 심연 속으로 밀어넣어버릴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하라리 교수는 아직 우리에게 통제권이 있으며, 다음 선택을 매우 신중하게 해야 한다고 경고합니다. AI는 주체성을 지닌, 우리 정보 네트워크의 정식 구성원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하라리 교수는 스스로 목표를 추구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컴퓨터의 출현이 정보 네트워크의 근본적인 구조를 변화시킨다고 주장합니다. 이미 복잡한 금융 파생상품 설계나 외환거래, 무수한 법률 문서 요약이나 판례 분석 등에 AI가 활용되고 있습니다. 인간을 앞서는 능력을 갖춘 개별 컴퓨터들이 연결돼 ‘상호 컴퓨터 현실’을 구축하고, 초지능을 지닌 컴퓨터들의 목표가 인간이 설정한 목표에 부합하지 않으면 인류가 지금까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규모의 재앙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하라리 교수는 경고합니다.
그는 다수의 인터뷰에서 ‘넥서스’가 던지는 근본적인 물음이 “우리가 지혜로운 사람(호모 사피엔스)이라면 왜 이토록 자기 파괴적일까”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생태적 붕괴와 국제정치적 긴장에 이어 친구인지 적인지 모를 AI 혁명까지, 인간 본성의 어떤 부분이 우리를 자기 파괴의 길로 내모는지 묻는 것입니다. 하라리 교수는 원인이 우리의 본성이 아니라 정보 네트워크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인류가 대규모로 협력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성해내면서 엄청난 힘을 가지게 되었지만, 지혜를 만들어내지는 못했기에 오늘날의 실존적 위기를 자초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하라리 교수는 에필로그에서 이 책의 목표를 “AI 혁명에 대한 보다 정확한 역사적 관점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명확하게 밝힙니다. 역사는 과거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연구하는 것이라는 그의 역사관에 따라 지난 수천 년 동안 ‘정보 네트워크’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결국 네트워크가 막강해질수록 자정 장치가 중요해집니다. 하라리 교수는 “민주주의 국가는 정보 시장을 규제할 수 있으며, 민주주의의 생존 자체가 이런 규제에 달려 있다”고 말합니다.
유발 하라리 ‘넥서스’ 출간 인터뷰 정리
하라리 교수는 ‘넥서스’ 출간을 맞아 지난 10월 15일 국내 언론과 진행한 화상 인터뷰에서 “우리는 20년 후에 어떤 기술이 필요할지 모른다”며 “누구도 그에 대해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컴퓨터, 코딩만 하다 보면 이뤄 놓은 모든 게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고 강조하며 급변하는 AI 시대에 이과 과목에만 몰빵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휴식 시간이 필요한 인간과 달리 AI는 24시간 내내 쉼 없이 정보를 읽고 해석하면서 ‘딥러닝’을 배우고 있기 때문에 AI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라리 교수는 “AI의 발전 속도를 봤을 때 앞으로 인간이 코딩할 필요가 없어질 수도 있다”며 “그런 상황에서 코딩을 공부하면 그간의 노력이 헛수고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 분야보다는 전반적인 역량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춰 머리(지능), 가슴(감성), 손(기술)을 다 갖춰야 한다고 짚은 그는 유연성도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AI의 활용으로 사회는 더욱 빨리 변하고, 그 과정에서 특정한 직업은 사라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라리 교수는 정신적 유연성을 기르기 위해 하루 6~8시간을 읽고 쓰며, 이를 체화하고자 매일 2시간씩 명상을 합니다. 1년에 한두 달은 휴대전화와 책도 보지 않고 아예 외부와 격리된 채 생활을 합니다. 그는 “음식을 먹을 때 소화하는 시간이 필요하듯, 정보를 소화하는 데에도 숙고와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아울러 “50세에 새로운 일을 배우는 게 흔해질 수 있다”며 “계속 배우고, 변해갈 수 있는 도구로서 교육이 필요하다”고 정신적 유연성을 강조했습니다.
신간 ‘넥서스’에서는 AI의 위험성에 대해 강하게 경고합니다. 위험성의 핵심은 AI가 인류의 도구가 아니라 ‘행위자’라는 것입니다. 특히 소수가 독점한 AI 기술 덕택에 미국이나 중국, 특정 기업이 부와 권력을 독차지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소수가 첨단 기술을 활용해 지배하는 사회로 변질할 가능성이 크지만, AI뿐 아니라 인류가 오랫동안 쌓아온 지식과 문화가 여전히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히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을 예로 들었습니다.
그는 “양측의 충돌 원인은 자원도, 땅도 아니다”라며 “집과 병원을 지을 충분한 땅이 있고, 에너지와 식량도 풍부한데 그들이 싸우는 원인은 ‘신화’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 땅을 다스릴 전적인 권리를 신이 주셨기에 땅을 나누면 안 된다는 것”이라며 “자원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상상으로 만든 신화에 대한 믿음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AI가 전쟁에 활용되고 있는 이 시대에도 수천 년 전에 탄생한 신화 탓에 전쟁이 발발했다”며 “그래서 역사와 문화는 아무리 오래됐을지라도 삶에서 중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