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연 작가의 장편소설 ‘유괴의 날’은 2019년 7월 시공사 출판사에서 출간했습니다. 어설픈 유괴범과 11세 천재 소녀의 특별한 공조를 담은 코믹 스릴러 소설로, 서스펜스와 블랙코미디가 독특하게 섞여 흥미진진함을 자아냅니다. 유괴를 소재로 했지만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유쾌함을 잃지 않습니다.
시공사 출판사는 ‘유괴의 날’에 대해 “서툴고 인간적인 30대 남성 명준과 천재적인 두뇌로 매사 냉철한 판단을 하는 10대 소녀 로희, 둘 사이의 엉뚱한 케미스트리가 웃음을 준다”며 “그러면서도 스릴러로서 정체성은 잊지 않아 형사 상윤이 수사를 통해 사건의 진상을 차례차례 밝힐 때는 인간의 악의에 대한 오싹한 공포와 예상치 못한 반전의 쾌감을 느끼게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숨겨져 있던 진상이 모두 드러나면 남들보다 우월하고자 하는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이 얼마나 끔찍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독자는 알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소설 ‘유괴의 날’ 줄거리
이야기는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불운한 아버지 김명준으로 시작합니다. 호구 잡히기 십상이라는 말로 평생 놀림받아온 명준은 오직 현재만 보고 사는 단순한 사람입니다. 지금 그에게 중요한 것은 아픈 딸 희애뿐이죠. 수술을 하지 못하면 희망이 없는 상황에 절망한 명준 앞에, 3년 전 일언반구 없이 사라졌던 희애 엄마 혜은이 나타납니다. 혜은은 희애의 수술비를 위해 부잣집 딸 로희를 유괴하자는 제안을 합니다. 명준은 범죄는 안 된다며 극구 거부합니다. 혜은은 “로희는 사실 가정 내 폭력에 시달리는 가엾은 아이로, 무사히 돌려보낸 후 몰래 신고해주면 아이를 도와주는 셈”이라고 강조합니다. 명준은 결국 이 말에 설득돼 범행을 실행합니다.
그런데 긴장한 나머지 명준은 실수로 로희를 차로 치고, 사고 후유증으로 아이는 기억을 몽땅 잃게 됩니다. 아빠냐고 묻는 로희에게 엉겁결에 그렇다고 대답한 명준은 서둘러 아이를 집에 돌려보내고자 부모에게 전화를 하지만 받지 않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로희의 집으로 직접 찾아가는데, 잔인하게 살해된 부부를 발견합니다. 명준은 경찰이 살인범과 유괴범이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할까봐 초조하기만 합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로희가 명준의 어설픈 거짓말을 꿰뚫고 그를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명준과 로희는 가해자와 피해자 혹은 어른과 아이라는 대비가 명확한 관계인 듯하지만 명준이 단순하고 어리숙한 반면 로희는 두뇌 회전이 빠르고 영민한 아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며 위치가 전도됩니다. 사건을 추적하는 중에 아빠와 딸을 연기하게 되면서 두 사람의 관계성은 다시 바뀌는데, ‘아빠’라는 호칭을 부르는 것마저 낯선 가정에서 자란 로희가 딸 바보 명준의 다정함을 무시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죠. 두 사람은 로희의 진짜 가족과 연결된 더 어두운 음모의 그물을 발견하면서 예상치 못한 유대감을 형성하고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납니다.
소설 ‘유괴의 날’의 테마
‘유괴의 날’은 크게 ‘도덕성과 구원’ ‘어린시절 vs 성인기’ ‘가족과 연결’ 세 가지 테마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명준의 초기 범죄 행위가 보호적이고 거의 아버지 같은 역할로 진화하면서 도덕성의 음영을 탐구합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결함 있는 선택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구속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합니다. 이와 함께 로희의 조숙한 지성은 명준의 미성숙함·서툶과 대조를 이루며 전통적인 어른-아이 역할을 뒤집는 역동성을 만들어냅니다. 이러한 긴장감이 소설의 유머와 감정적 깊이를 크게 이끕니다. 이 소설은 본질적으로 가족과 관계를 탐구하는데, 특히 전통적인 역할과 관계가 단절되거나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의 의미를 파고듭니다.
전작에서 “나를 죽이는 것도, 나를 살리는 것도 가족”이라며 가족의 중요성을 말한 정해연은 ‘유괴의 날’을 통해 자식을 소유물로 생각하는 한국 사회를 풍자하고, 유괴범과 유괴된 피해 아동인 명준과 로희의 기묘한 유대를 보여줌으로서 진짜 가족의 의미를 되묻습니다.
정해연 작가의 글쓰기 스타일
정해연은 주로 인간 내면의 악의와 소름끼치는 이중성을 묘사해왔습니다. 첫 장편 스릴러인 ‘더블’은 사이코패스의 극단적인 양면성을 섬뜩하게 다루는 데 성공해 태국과 중국에서도 출간됐습니다. 스타 정치인이 등장하는 ‘악의’에서는 인간의 저열한 밑바닥을 적나라하게 그렸습니다. 속도감 넘치는 필체로 사람들의 어두운 그림자를 입체적으로 묘사하는 데 집중한 정해연은 ‘한국의 차세대 스릴러 작가’ ‘놀라운 페이지 터너’라는 평을 받으며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2016년에는 ‘제2회 YES24 e연재 공모전’에서 ‘봉명아파트 꽃미남 수사일지’로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봉명아파트 꽃미남 수사일지는 임대아파트를 배경으로 하고, 아파트 관리인이 주인공이라는 지극히 한국적이면서도 기존 스릴러 작품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설정을 현실적인 사건 속에 흥미롭게 풀어낸 소설입니다. 이를 통해 선이 굵고 잔혹한 스릴러뿐 아니라 가벼운 일상 미스터리에도 필력이 탁월하다는 것을 인정받았습니다.
드라마·웹툰으로도 만나는 ‘유괴의 날’
‘유괴의 날’은 독특한 전제와 캐릭터 중심의 스토리텔링으로 호평을 받았습니다. 주인공 간의 관계는 종종 소설의 핵심으로 강조됩니다. 이 작품은 스릴러적 요소뿐 아니라 깊은 감정적 울림으로도 좋은 평가를 이끌어내 드라마로 제작됐습니다. 배우 윤계상과 유나가 주연을 맡아 2023년 9~10월 ENA 수목 드라마로 방영했습니다. 해당 드라마는 영국에서도 리메이크됩니다. 콘텐츠 스튜디오 에이스토리는 지난 2월 유럽 최대 미디어 그룹 중 하나인 스튜디오 함부르크 프로덕션 그룹(SHPG)의 해외 자회사 스튜디오 함부르크 유케이(SHUK)와 ‘유괴의 날’ 리메이크 공동제작을 확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소설 ‘유괴의 날’은 드라마화에 이어 에이스토리 자회사 에이아이엠씨가 웹툰으로 제작됩니다. 에이아이엠씨는 지난 7월 “웹툰 ‘남주와 그리는 로맨스’의 전재훈 작가가 그림을 그리고 ‘소녀180’의 나우원 작가가 스토리를 맡는다”며 ‘유괴의 날’ 웹툰 제작 계획을 알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