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의 영화 개봉(12월 11일)을 앞두고 아일랜드 작가 클레어 키건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Small Things Like These)이 예스24와 알라딘 독자들이 뽑은 올해의 책 1위에 선정됐습니다. 지난 9일 예스24의 발표에 따르면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올해의 책 독자 투표에서 89만9444표 중 1만3320표(1.5%)를 얻어 1위를 차지했습니다. 50만781명이 참여한 알라딘 독자 투표에서도 1위를 했습니다. 이 책은 소설가들에게도 주목받았습니다. 교보문고에서 진행한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 순위에서 공동 3위에 올랐습니다.
클레어 키건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 개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가족과 책임, 사회적 기대를 주제로 합니다. 18세기부터 20세기 말까지 아일랜드 정부의 협조하에 가톨릭 수녀원이 운영하며 불법적인 잔혹 행위를 저질렀던 ‘막달레나 세탁소’가 배경이 됩니다. 아일랜드의 시골 마을에서 안온한 삶을 살아가던 한 남성이 수녀원에서 자행되는 불의를 보고 겪게 되는 내적 갈등을 다뤘습니다.
작가 특유의 섬세한 관찰과 정교한 문체로 한 인간의 도덕적 동요와 내적 갈등, 실존적 고민을 치밀하게 담아냈습니다. 짧은 서사 속에서 복잡한 감정과 도덕적 딜레마를 포착하는 능력으로 칭찬을 받았습니다. 독자와 비평가 모두 키건의 감수성과 선정주의 없이 역사적 불의에 주목하는 능력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2022년 부커상 최종후보에 오르고, 같은 해 오웰상(소설 부문), 케리그룹 문학상 등 유수의 문학상을 휩쓸었습니다. 부커상 심사위원회는 “아름답고 명료하며 실리적인 소설”이라는 평을 보내며 이 소설이 키건의 정수가 담긴 작품임을 알렸습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 줄거리
아일랜드 전체가 실업과 빈곤에 허덕이며 혹독한 겨울을 지나고 있는 1985년, 소도시 뉴로스에 사는 석탄 상인 빌 펄롱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펄롱은 빈곤하게 태어나 일찍이 고아가 됐으나 어느 친절한 어른의 후원 아래 경제적 도움을 받았고, 그런 본인이 그저 ‘운’이 좋았음을 민감하게 자각하는 사람입니다. 부유하진 않아도 먹고사는 데 부족함 없이 슬하에 다섯 딸을 두고 안정된 결혼 생활을 꾸려가는 그는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고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안온한 일상을 언제든 쉽게 잃을 수 있다는 사실까지도 잊지 않고 살아갑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아침, 펄롱은 수녀원으로 석탄 배달을 나가 창고에서 한 여자아이를 발견하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불법적인 사건의 정황을 파악하게 됩니다. 수녀원이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는 마을에서 안락한 삶을 누리고 있기에, 위험이 예견된 용기를 내야 할지 딸들과 가정을 위해 자신도 침묵해야 할지 깊은 고민에 빠집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 대한 해설
키건은 종교나 수녀원에 시선을 집중시키는 대신 주인공이 삶에서 느낀 비참함이나 감격의 순간들에 주목하는 방식으로 서사를 풀어나갑니다. 사건은 단지 사회의 문화나 환경이 한 소시민의 도덕성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포착하기 위한 장치로서 작용할 뿐이고, 그 안에서 개인의 내면을 뒤따라감으로써 인간의 실존적 고민과 삶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키건은 부커상 인터뷰에서 “저는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고, 우리 마음속에 갇혀 있는 것을 어떻게 안고 살아가는지에 관심이 있다”며 “의도적으로 여성 혐오나 가톨릭 아일랜드, 경제적 어려움, 부성 또는 보편적인 것에 대해 글을 쓰려고 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하지만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소녀와 여성이 수감되어 강제로 노동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거의 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하고 싶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번역 출간한 다산책방은 “드러내려고 의도하지 않았으나 드러난 것들이 의미하는 바가 없지 않다”며 “유럽에서 가장 완고하다고 여겨지는 가톨릭 국가인 아일랜드, 그리고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크리스마스가 배경이라는 점에서 이야기의 비극은 강화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그러나 그 비극 속에서 쉽게 절망하지 않고, 모두가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을 때 문밖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관심을 두는 한 사람에게서 우리는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한 줄기 희망을 찾는다”고 덧붙였습니다. 키건 역시 이 작품이 “우리 가운데 살아남을 것은 사랑”이라는 영국 시인 필립 라킨의 말에 응답하는 책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작가 클레어 키건 소개
1968년 아일랜드 위클로에서 태어난 키건은 17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로욜라대학교에서 영문학과 정치학을 공부했습니다. 이후 웨일스대학교에서 문예창작 석사 학위를 받아 학부생을 가르쳤고, 더블린트리니티칼리지에서 철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1999년 첫 단편집인 ‘남극’(Antarctica)으로 루니 아일랜드 문학상과 윌리엄 트레버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습니다. 2007년 두 번째 작품 ‘푸른 들판을 걷다’(Walk the Blue Fields)를 출간해 에지 힐상을 받았습니다. 에지 힐상은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출간된 가장 뛰어난 단편집에 수여합니다. 2009년에 쓴 ‘맡겨진 소녀’는 같은 해 데이비 번스 문학상을 수상했고 ‘타임스’에서 뽑은 ‘21세기 최고의 소설 50권’에 선정됐습니다.
키건은 24년간 활동하면서 단 4권의 책만을 냈는데 모든 작품이 얇고 예리하고 우수해 ‘가디언’은 “탄광 속의 다이아몬드처럼 희귀하고 진귀하다”라고 평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