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 작가가 3년만에 장편소설 ‘영원한 천국’을 펴냈습니다. 지난 8월 28일 은행나무출판사에서 출간한 ‘영원한 천국’은 전작인 '완전한 행복'(2021)에 이은 욕망 3부작의 두 번째 작품입니다. 악의 3부작으로 불리는 ‘7년의 밤’ ‘28’ ‘종의 기원’에서 인간의 본성에 도사린 ‘악’과 대면하고 그것과 처절한 사투를 벌인 바 있습니다. 이제 인간의 끝 간데없는 ‘욕망’과 정면 승부합니다.
‘영원한 천국’ 줄거리
‘영원한 천국’은 과학의 발전으로 인류의 욕망을 점점 더 쉽고 간편하게 성취할 수 있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합니다. 스토리텔러인 해상은 가상 세계 '롤라'를 활용해 의뢰자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일인칭 가상극장 '드림시어터'를 만드는 설계자입니다. 롤라의 세계는 빛나는 가상들이 만나 현실을 이루는, 벤야민적 아케이드입니다. 경주는 해상에게 자신의 기억을 바탕으로 드림시어터를 만들어 달라고 의뢰합니다.
도수치료사로 이름을 날리던 경주에게 불운이 연이어 몰아닥치면서 그의 기억은 비참하기만 합니다. 아버지의 죽음에 이어 의료사고로 직장을 잃고 자신과 싸우고 집을 나간 동생은 노숙인촌에서 의문의 시체로 발견됩니다. 실의에 빠진 경주는 급여가 높고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노숙인 재활시설 삼애원에 보안요원으로 취업합니다. 삼애원은 이상기후로 인해 유빙이 떠내려 오는 서해의 외딴 곶 천애고원에 자리했죠. 경주는 그곳에서 ‘인간이 죽지 않는 방법을 찾아냈다’ ‘그 실험 대상으로 노숙자들에게 무작위 티켓이 발부되고 있다’ ‘그 티켓을 얻기 위해 노숙자 연쇄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등의 소문을 듣게 됩니다. 그는 경주는 동생 승주의 죽음이 이와 연결돼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경주와 함께 보안요원으로 입사한 동기 박제이는 노숙자들 사이에서 무언가를 비밀리에 찾고 있었고, 경주가 이를 눈치챕니다. 어느 날 새벽 순찰을 돌던 경주는 삼애원 뒷산으로 향하는 의문의 발자국을 발견하고, 그 끝을 따라가다가 새벽녘 차가운 눈밭 위에서 피투성이가 된 제이를 마주합니다. 경주에게 업혀 병원으로 이동하는 중 제이는 의식이 오가는 상황에서 해상의 이름을 부르고, 경주는 제이의 여자친구인 해상의 존재를 알게됩니다.
소설 ‘영원한 천국’만의 매력
정유정은 인간의 어두운 심리와 복잡한 관계, 사회의 이면을 깊이 탐구해 독자들을 긴장감 넘치는 서사 속으로 빠져들게 만듭니다. 주로 도덕적으로 애매한 인물들이 극한 상황에서 겪는 갈등과 선택을 통해 인간 본성 및 사회적 문제를 탐구합니다. ‘영원한 천국’은 정유정이 그동안 다뤄온 서스펜스 스토리텔링의 전통을 이어가면서도, 생과 사의 경계를 넘어선 존재론적 주제에 깊이 다가갑니다. 이야기는 죽음 이후의 세계와 삶에서 지은 죄책감, 용서와 구원의 가능성에 맞닥뜨린 인물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소설 속 가상현실 롤라의 세계는 이 세계에 대한 거대한 비유입니다. 그러나 인간성은 영원히 아케이드 속을 헤매는 것에 멈추지 않습니다. 정유정은 드림시어터를 통해 인간의 본성을 드러냅니다. 인간은 영원 속에서도 유희를 찾는다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나’를 마주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은행나무출판사는 “자신에 대한 가장 엄정한 방식의 드림시어터를 설계하고자 하는 경주의 욕망은 의미심장하다”며 “어떤 설계도 없는 삶을 살아보고자 하는 욕망, 그 날것의 세계에 뛰어들어 맞서보려는 욕망, 끝내 제 운명과 씨름해 이겨내고자 하는 욕망, 인간 욕망의 끝에서 작가가 마주한 것은 바로 이 펄펄 끓어오르는 야성”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두꺼운 유빙 아래의 추운 심해에서, 뜨거운 사막의 태양 아래서 정유정이 길어 올린 것은 골수를 쪼갤 듯 날카롭고 압도적이며 뜨겁다”며 “‘욕망 3부작’의 두 번째 작품이 이토록 선연한 이유”라고 평했습니다.
‘영원한 천국’ 주요 테마와 구조
정유정은 현실적이면서도 영적인 탐구를 병행함으로써 기존 작품과는 다른 차원의 서사를 펼칩니다. 이 소설 속에서 그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인물들이 과거의 선택과 마주하게 하며, 독자들에게 구원과 속죄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영원한 천국’은 다양한 사회적 비판과 도덕적 질문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정유정은 죽음 이후의 삶과 카르마, 궁극적인 평화에 대한 탐구를 통해 영혼의 순례를 표현합니다. 특히 가족 간의 의리, 배신, 개인의 책임감 등 인간 관계의 복잡성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를 통해 사회적 규범과 기대가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드러냅니다.
정유정 특유의 현실적 문체와 섬세한 심리 묘사는 이 소설에서 특히 돋보입니다. 인물의 내적 독백과 다중 시점 서사를 통해 각 인물의 동기와 배경을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플래시백과 내적 독백, 다중 시점 전개를 통해 서스펜스를 유지하고 독자들에게 인물들의 내면과 심리를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작품의 의의와 정유정의 새로운 도전
‘영원한 천국’은 정유정이 기존의 작품에서 보여준 심리 스릴러적 요소와 더불어 존재론적 탐구와 영적 질문을 결합한 새로운 도전을 담고 있습니다. 그는 단순히 범죄나 심리적 갈등을 그리는 것을 넘어 인생의 의미와 죽음 이후의 세계를 고찰합니다. SF와 로맨스, 미스터리를 버무려 속도감 있게 풀어내면서 인간의 욕망이 완전히 충족되는 지점에 도달한다면 최후에 남는 인류의 욕망은 무엇일지를 묻습니다.
한 언론 인터뷰에서 정유정은 “이번엔 SF 문법을 처음 가져와 봤고 로맨스가 들어간 것도 처음이라 저로서는 용기가 필요했다”며 “특히 로맨스는 본격적으로 써본 적이 없는데 이번엔 두 번 나온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새 작품을 쓸 때마다 새로운 시도를 꼭 해보는데, 이번에는 여러 장르를 섞어 서로 협응하게 했다”며 “용기가 필요한 새로운 시도였다”고 강조했습니다.